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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소설, 상식적 죽음의 선을 넘다

소설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죽음

김세경 2020.12.29

생로병사(生老病死). 죽음(死)은 생명의 대척 지점에 있다. 맞고 싶지 않은 종말, 인류 공통의 기피대상 불청객이다. 당사자에게는 두려움을 주고 주변인에게는 상처로 남아 오래도록 불건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상식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소설가들은 다른 시선으로 죽음을 바라본다. 죽음도 삶의 아름다운 과정이거나, 선(善)의 아우라가 될 수 있다.


여기 소개하는 소설 속 죽음은 상식을 파괴했다. 재기 발랄한 죽음, 선택한 죽음, 생명이라 생각지 못한 것의 죽음이 등장한다. 생소한 죽음이어서 눈길을 사로잡고, 불멸로 이어져 놀라운 죽음이다. 이 소설들은 죽음이 영원불변의 비극이 아니며 죽음이 남긴 고통 또한 치유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죽음을 응시할 때 그의 다른 얼굴까지 보고자 하는 이에게 이 소설들은 훌륭한 반영이 되어 줄 것이다.


" 죽음은 삶의 종착역인가? 환승역인가?

어느 역으로 갈 지는 기차에 오르는 이의 선택에 달려있다. "

<고도에서> : 이상(理想)적 죽음에 대한 훈훈한 상상


SF, 판타지, 호러 소설의 킹(King). 다작으로, 영화화된 작품 수로, 보장된 작품의 질로도 유명한 스티븐 킹(Stephen King)의 죽음 판타지다. 그의 출세작 중 <캐리>나 <샤이닝>을 본 사람은 죽음이라는 주제에서 공포를 연상하겠지만, 이 소설은 <쇼생크 탈출>, <그린 마일>처럼 훈훈하다.


죽음의 순간은 슬픔, 음침함, 고통, 괴로움, 상실 같은 어두운 쪽을 떠올리게 한다. 애써 밝게 생각해봐도 ‘집에서 가족들에게 충분한 작별 인사를 나누고 떠나는’ 정도를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입원 치료 중이라면 이마저도 불가할 가능성이 높다. 임종이 가까워 퇴원하려면 주변인을 보호하기 위해 온갖 법률 검토와 절차를 밟아야 할 텐데 이를 마친 후엔 이미 병원 영안실에 있을 것이다.


때문에 <고도에서>의 스콧 캐리가 선택한 죽음은 더없이 이상적으로 보인다. 그는 체중이 감소하는 괴이한 질병에 걸려 조만간 세상을 뜰 것을 깨닫자 기상천외한 죽음을 설계한다. 아니 사실은, 스콧이 죽은 것인지 그저 다른 세계로 간 것인지 잘 모르겠다. 주변 사람에게 웃음을 주며 떠난 그는 어디에선가 잘 지낼 것만 같다. 우리가 바라는 죽음이란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선택할 수 있고 기억될 수 있는, 삶의 과정으로서의 죽음 말이다.

고도에서
<고도에서>

스티븐 킹 지음 |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19년 11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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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포 유> : 로맨스 소설에 존엄사라니


<애프터 유> <스틸 미>로 이어지는 삼 부작 로맨스 소설의 첫 권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많은 관객을 웃기고 울렸다. 각 권은 다른 에피소드로 전개되므로 한 권만 읽어도 부담이 없다. 조조 모예스는 이 책으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이 소설에는 특이점이 있다. 달달한 환상에 천착하지 않고 현실이 주는 짠맛, 신맛, 쓴맛까지 모두 담았다. <미 비포 유>는 엉뚱한 감성과 따뜻한 마음씨, 독특한 유머감각이 빛나는 루이자 클라크가 교통사고로 전신장애를 갖게 된 윌 트레이너의 간병인이 되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핵심에 장애가 주는 고통과 존엄사에 대한 갈등이 있다.


소설에 감정이입된 독자는 중후반부터 등장하는 존엄사 문제에 대혼란을 겪게 된다. 뉴스에서 보던 존엄사는 남들이나 겪을 법한 사회적∙법률적 문제 그 이상이 아니었지만, 이미 소설에 빠진 이에게는 내 이야기인 것이다. 존엄사는 죽음의 방식에 대한 선택의 문제일 뿐인가? 아니면 모두의 고통을 끌어안고 떠나는, 힘들지만 위대한 여정일까? 이야기 자체도 흥미롭지만 존엄사를 내 인생에서 겪을 수도 있는 문제로 느끼게 한 참신한 스토리텔링에 찬탄하게 된다.

미 비포 유
<미 비포 유>

조조 모예스 지음 | 김선형 옮김 | 살림 | 14년 01월 0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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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파랑> : 로봇의 소멸에 애도의 눈물이 흐른다면


2019년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받은 소설이다. 작가 천선란은 동식물이 주류가 되고 인간이 비주류가 되는 지구를 꿈꾼다고 하였다. <천 개의 파랑>은 비주류의 하모니가 빚어내는 찬란한 아름다움의 결정체다. 젊은 작가만이 지닐 수 있는 순수한 인류애가 한 기수(騎手) 로봇의 짧은 일생에 응축되었다.


이야기는 로봇이 최후를 맞는 순간, 과거의 기적을 회상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실수로 마사(馬舍)에 흘러든 인공지능 로봇이 말을 타면서 새로운 감각을 느끼고 성장할 때 독자는 뭉클해진다. 몸체가 고장 난 로봇이 우연히 엮인 손상된 인간들과 묘한 상호 돌봄 관계를 형성할 때는 안도감마저 느끼게 된다. 소설은 우리가 눈 감아버렸던 내면의 상처를 마주하게 하고, 회복하게 한다.


무지하게 태어나 미숙한 채 낯선 세상을 마주하고, 떨어지고 깨지면서도 나아가는 존재. 이웃한 생명과 함께 호흡하고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선을 택하려는 의지. 로봇이 기적이라 부른 그 짧은 시간이 우리 생의 반영임을 깨닫는 순간 독자는 로봇의 최후를 ‘고장’이 아닌 ‘죽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하여 로봇 콜리가 부서질 때 애도의 눈물이 흐른다면, 우리는 그 죽음에서 삶의 이유를 발견한 것이리라.

천개의 파랑
<천 개의 파랑>

천선란 지음 | 허블 | 20년 08월 19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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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김세경
책벌레인데 학업 성적은 나빠 놀림을 받았다. 그래도 가족들은 뭐든 내게 묻는다. 잔뜩 읽으니 머리에 꽤 많이 든 것 같다고. 암. 연애도 읽어보면 더 잘할 수 있지. 쉽고 재밌는 책의 제 주인 찾아주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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